"잠깐 얘기 가능해?"
바빠 죽겠는데 나보다도 훨씬 더 바쁠 이 사람이 채팅을 걸어왔다.
회사에서 채팅을 걸어오는 사람들은 여럿이고 그 이유 또한 다양하다.
나는 수다를 떨만큼 재미있는 사람이 아님을 나와 일해본 사람들은 다 알기에 내게 오는 모든 채팅은 업무 관련의 내용이다. 나는 그 채팅들을 중요한 일/보통의 일/몇 시간 후 답해도 될 일로 분류하고는 이렇게 바쁠 때는 "매우 중요한 일"의 채팅에만 답을 한다.
이 사람의 채팅은 늘, 거진 "매우 무척이나 중요한 일" 이다.
"응, 나 지금 시간 돼."
곧바로 걸려오는 전화.
이 사람과는 불필요한 스몰톡을 하지 않아도 되기에 받기 꽤나 편한 전화다.
"안녕"
"안녕, 잘 지냈어?"
"응, 잘 지냈어, 너는?"
"나도."
그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나 회사에 노티스 했어. 곧 VP가 따로 팀한테 이메일을 보낼 거야. 그전에 너한테 따로 미리 알려주고 싶었어"
.
.
.
그가 회사를 떠난다고 한다.
"안 돼.......!"
전화이기 때문에 크게 소리를 지를 수 없는 나는 내가 오디오상으로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최대치 하고서는 말했다.
어째서냐고,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지 물어도 되는지, 이런 건 오디오상으로 느끼기가 힘들다.
나는 묻지 않기로 한다.
"네가 무척 그리울 거야."
진심이었다.
"그동안 너와 일하면서 즐거웠다고 알려주고 싶었어. 알잖아, 한동안 업무량이 너무 많았어. 그리고 이제는 재택근무도 축소하는데, 여러 가지를 저글링 하기가 힘들어서 내린 결정이야."
너무나 이해가 된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 회사에 입사한 그 이지만, 경력으로 따지면 그는 나보다 이미 약 10년은 앞선 사람이다.
그의 경력과 경험이라면 분명 고르고 골라 좋은 곳을 갈 것이다.
걱정이 되는 건 우리 팀이다.
그 자리를 메꾸는데 얼마나 걸릴까. 10년 이상의 경력직을 구하는 건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자리가 빈 동안은 누가 나눠서 업무를 할까. 내가 나선다 한들 도울 수 있는 건 아마 10% 정도밖에 안될 거다. 그리고 나는 이미 지쳐있다. 그러면 나머지 9할은 어떻게 되려나.
아, 나는 또 미리 걱정을 사서 하고 있다.
내 보스를 믿고, 그의 보스를 믿고, 우리의 보스들의 보스를 믿어야 한다.
다행히도, 이번주와 다음 주는 매우 무척이나 바쁠 예정이라 걱정하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것이다.
급한불들을 끄고 나면, 보스들은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를 제공할 것이다.
나는 내심 그가 따로 시간을 내어 내게 언질을 주었다는 사실에 기뻐진다.
그러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게 해 준 그에게 감사를 표한다.
"미리 알려줘서 고마워. 너와 일하는 동안 많은 걸 배웠어."
99% 재택근무에서 주 2일 재택근무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의 작은 팀에는 빈자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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