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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생각들

나는 용을 본 적이 있다.

by 아이고메 2023.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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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떠오르는 기억들 중 하나, 나는 용을 본 적이 있다.


술을 먹고 들떠있을 때 조차도 함부로 꺼내면 안 될 것 같은 이야기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인 내가 용을 보았던 일에 대해 기록하고자 한다.

사실 그 기억에 대해 글을 쓰고 싶은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진작에 그때의 기억에 대해 쓰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본능적으로 그 일에 대해 가볍게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정확히 밝히자면 내가 본건 용이아닌 쌍용이다.




 


진짜, 정말로 너무 추운 아침이였다.
 
당시 내가 여름을 보낸곳은 한국의 시골 산골로, 편의점은 고사하고 근처 마트를 가려면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을 나가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냥 깡 시골. 동네에 딱 한 곳에 있는 치킨집에서 치킨을 어찌어찌 주문하면, 3시간이 지나 배달이 되곤 했던, 노란 노끈에 묶인 갈색 박스 속에 담겨있었고, 막상 먹어보면 너무도 질겼던 그곳의 옛 통닭이 기억난다.

여름이었지만 그곳의 아침과 밤에는 너무 추워서 입김이 날 정도였다. 여름이었지만 여름옷은 물론, 긴팔과 긴바지에 바람막이, 그리고 도심에서는 늦가을에나 입을만한 겉옷까지를 하루 내 돌아가며 입곤 했다.

보통은 오전 조깅을 시작하고 5분이 지나면 열이 올라와 추운 아침공기에 익숙해지곤 했다.  그날은 몸이 아픈것도 아닌데 몸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산 속이라 오전에는 늘 안개가 그득했는데, 때문에 당장 한 치 앞이 보이 지를 않으니 빨리 뛰고 싶어도 속도를 올릴 수가 없었다.

오전의 조깅 코스는 숙소를 기점으로 크게 산을 한바퀴 도는 코스였다. 코스 중 가장 높은 곳으로 가면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희미하게 보이던 게 생각난다.
그날은 동네에 행사가 있었던것같다. 나는 나와 함께 오전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 값진 정보는 대체 어디서 알게 되는 건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안개와 싸우면서 확보한 조금의 시야에는 주말장같은게 열리면 보이던 행사용 풍선이 보였다.
행사이야기를 하면서 잠깐 멈춘 사람들사이에서 나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숨을 고르고서는 매일 보던 풍경에 행사용 풍선 하나가 생겼다고 조금 달라 보이던 저 멀리의 마을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때 나는 쌍용을 보았다.



흐릿하게 보이던 풍선에 시선을 고정한채로 추운 아침 공기에 언 뺨을 손으로 만지던 내 앞에서

하늘에 전투기가 지나가면 남기는 그런 구름자리 두 줄이 서로를 휘어감으면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빠른 바람소리같은것을 제외하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방금 그건 나만 본게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도 보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도 조용해졌던걸 보면 그들도 분명 방금 그것을 본 게 틀림없는데 굳어버린 나는 묻지 못했고 그들도 조용하기만 했다.


나는 그때 옛날에 나의 할머니도 용을 본적이 있다고 한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녀는 그런 큰 이야기들을 대수롭지 않게,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말하고는 했다.

그녀는 시골에는 종종 있는 일이라며, 그녀가 빨랫터에서 용을 보곤 했던, 그리고 그녀가 자란 동네에서는 우물가 근처에서 종종 나타다고 알려졌던 마을의 용 이야기를 정말이지 나만 빼고 다 겪는 일인 듯 양 말해주었다.
 
용을 겪은 사람이 나를 양육해서인지, 나는 용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제정신이 돌아온 우리는 다시 조금씩 조깅을 하며 숙소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그 웅장했던 경험을 "에이 모르겠다" 하고 넘겨버리는 사람도 있었고, 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며 아마도 행사관련 폭죽이 아침에 잘못 터진 게 아닐까, 하며 용일 수 없는 그것들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내 시선이 행사용 풍선이 아니라 다른곳에 고정을 했으면 용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와 같은 생각을 하며 멋진 용을 제대로 못 본 것에 대한 후회를 조금 했다.



이 일이 있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나는 나의 할머니에게 나역시 용을 봤음을 공유했다.
나의 할머니는 그랬으야? 하고는 걸레로 슥슥 바닥을 닦으며 내 용 사건에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녀에게는 용 사건이 흔한 일 이기에 유난 떨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했다.


나는 이 기억을 가까운 사람들과도 공유하지 않는다.
용의 존재에 대한 유무에 대한 무의미한 이야기를 피하고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런 용의 이야기는 나처럼 용을 본 적이 있거나 용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을 알고 있거나 한 사람하고만 말이 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저 시간을 때우기위한 수다에 이 기억을 사용하고 싶지 않음이다.  깨달음을 준 경험도, 감격스러움에 눈물을 흘린 경험도 아니지만, 그냥 함부로 떠벌리고 다니면 안 될 것 같은 이 기억은 안개가 자욱하거나 일교차가 심한 날에는 종종 생각이 난다.

그 용들은 쌍둥이였던 걸까. 커플이였을라나. 나의 할머니도 쌍용은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왜 그 둘은 함께였을까, 그리고 왜 그렇게 서로를 휘감으며 올라간 걸까. 그렇게 가면 하늘에 더 늦게 도착하는 거 아닌가? 그냥 쭉 가면 안 멋있으니까 휘감으면서 갔던 걸까? 그 용들은 그곳이 주거지였을까 아니면 그냥 휴가차 들렸던 걸까?


매우 큰 확률로 해소되지 않을 질문들이지만 나처럼 용을 본 적이 있는 사람과는 함께 고민해 볼 만한 질문들이다.



내년은 용의 해라고, 용띠인 나의 남편이 이야기 해준다.

내년에는 이기억이 보다 자주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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