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갔다 화장실을 들렀는데
익숙한 포스터 하나가 보인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여기로 연락을 달라는,
이제는 대부분의 화장실에서 보이는 이 포스터.
포스터에는 폭력을 당하고 있거나,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할 수 있는 이메일과 긴급전화번호가 쓰여있다.
고작 몇년전만 해도 이런 포스터들을 본 적이 없는데, 이제는 공공화장실의 대부분에서 이러한 포스터를 찾을 수 있다.
이런 포스터들은 왜 생겨난걸까?
안타깝게도, 미국에서는 가정폭력, 아동폭력, 데이트 폭력과 같은 일이 아주 번번이 일어난다.
몇 년 전, 플로리다에서 "남자 친구"와 함께 동물병원을 찾은 여성이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데스크에 "도와주세요. 납치를 당했어요"라는 쪽지를 건네며 동물병원의 도움으로 납치범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던 사건이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데스크 리셉션에게 "도와달라"는 메모를 건네는 여성.
약 15분 후 뒷문으로 조용히 나타난 경찰에게 체포된 남성.
위 남성은 한때 여성의 남자 친구였지만
폭력적인 관계를 여성이 끝내려 하자 총을 들고 위협하며 여자를 납치/감금했던 것이었다.
모든 곳을 자신의 납치법과 다녀야 했던 이 여성이 혼자서 갈 수 있는 공간은 단 한 곳, 여자화장실이었고
용기를 내어 메모를 쓴덕에 도움을 받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위와 같은 사건이 번복되자 여자화장실에는 아래와 같은 포스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혹시 데이트를 끝내고 싶나요?
틴더를 통해 만나기로 한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나타났나요?
혹시 현재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시나요?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드나요?
-바에서 안젤라를 찾아주세요. 바에 있는 멤버들이 당신을 도와 택시를 불러주고 바에서 나가는 동안 동행해줄 것입니다.
대화할 곳이 필요한가요?
지금 언어, 신체, 금융, 성 착취, 혹은 폭력을 당하고 있나요?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틴터 데이트에 나갔다가 죽을뻔했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오죽하면 구글에 "틴더 호러 스토리"라는 글모음집이 있을 정도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틴더에서 대화할 때의 밝았던 "그"는 없고, 대신에 음침하고 여자를 밝히는 누군가가 나오기도 하고,
만나자마자 대뜸 키스를 하려 하는 사람이 등장하기도 하며,
데이트 내내 불편해 일찍 일어나려 하니 집착을 보이며 스토킹 초기의 모습을 보인 그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에 왜 이리도 리스크가 커져버렸을까.
위의 포스터들을 보면 하나는 바코드처럼 보이기도 하고,
"안젤라"라는 코드를 사용해 현재 상태를 알리기도 하고,
QR코드를 통해 화장실내에서 도움을 청하는 방법이 나오기도 한다.
모두 다, '가해자 모르게'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들이다.
지금도 어디서 누군가는 타인을 착취할, 폭력을 행사할 방법들을 궁리해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가해자 모르게 피해자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인간이란 어쩌면 이렇게도 악질이면서 또 이타적일 수 있는 건지.. 어질어질하다.
안내 연락처들을 뜯어간 모든 사람들이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가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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