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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생각들

[미국 문화] 서울상경하는 사람들은 사투리를 비사용한다 하는데, 미국인도 그럴까?

by 아이고메 2023.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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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덕에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를 종종 즐겨 듣게 되었다.

오늘 아침 커피와 함께 들은 스탠드업 코메디언은 제프 폭스월디라는 사람으로, 본인이 "레드넥" (외진 시골에 위치하고 워킹클래스가 주인, 정치색을 강하게 표출하는 백인 중심의 커뮤니티를 일컫는다.  레드넥은 강한 남부 악센트의 영어를 사용하는 걸로 인식되는데, 미국 시골에 큰 성조기를 지닌 집들을 떠올리면 될듯하다)이라는 걸 거침없이 코미디에 쏟아붓는 코미디언이다.  그가 가진 아주 강한 남쪽 억양은 외국인인 내게 특히나 흥미롭게 들리는데, 오늘 아침에 들은 몇 에피소드들 중 하나를 공유해 보자 한다.



"너희들, 강한 레드넥 악센트를 가진 의사본적있어? 없지?"
(관객이 웃는다)
"생각해봐, 얼마나 웃기겠냐고, '긍께 말입니다, 전번 검진에서 종양이 발견되어부렸으야- 그랴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머리를 죄가 열어야 하는데 괜찮겠수?'
(관객이 웃는다)
"레드넥 악센트를 가진 변호사 만나본적은 있어? '너거가 잘못한 게 맞는데 거기서 그러면 어쩐다요'"
(관객이 웃는다)


물론 나는 남쪽 악센트를 가진 의사를 만난적도 없고, 남쪽 악센트를 가진 변호사는 영화에서나 봤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서는 "서울상경" 을 하면 보통 사투리와 억양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고 알고 있다. 미국도 그런 걸까?  갑자기 궁금해져 내 백인 미국인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미국 남부 사람들도 북쪽이나 중부로 이사를 가면 악센트를 없애려는 노력을 해?"


남편의 경험으로는 보통 억양을 없애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것 같다고 한다.  그냥 오래 살면서 억양이 옅어지는 정도.
그러고 보니 나도 일로 아주 가끔 남부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이 딱히 악센트를 가리려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을 하면 지방 억양을 자제하려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


ㄱ. 한국에서 서울상경을 한 사람들은 서울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투리나 억양을 없애려는 것인가?
ㄴ. 그렇다면 미국의 남부사람들 딱히 그러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서 인가?
ㄷ. 출생지역에 대한 자부심이라면 나는 어째서 남부 악센트를 지닌 변호사/판사/의사/혹은 금융권의 사람들을 단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인가?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이기에 나는 답을 모른다.
그저 내가 생각해본 why를 적어보려고 한다.


1. 미국, 특히 대도시들은 수많은 문화가 섞여있기에 누군가 조금 다른 영어를 한다 한들 그것이 특출 나게 튀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사투리를 쓴다 한들 그것이 조직에서 튀지 않고, "평균의 영어"라는 콘셉트가 희미해지기에 내 영어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모두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살짝 다른 한국말을 하면 굉장히 튀기 때문에 "평균"의 한국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압박감이 미국보다 훨씬 크다.


2. 한국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어떤것, 혹은 이제껏 해온 무언가를 노력을 통해 "바꾸거나" "고친다"는 생각에 대해 딱히 부정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에서는 살이 쪘으면 쪘다고 뭐라 하는 사회보다 살을 빼려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love myself와 같은 슬로건이 마케팅으로 만연히 사용됐을 만큼 '나는 바뀌지 않아. 너희들이 보는 시각을 바꿔'와 같은 어프로치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개인 주치의쯤은 되어야 "건강에 위험하니 살을 빼셔야 합니다."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여기 매우 웃기는 점이 있는데, 바로 미국에서는 사화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너 자신을 사랑해!"이지만, 실제로 뷰티/다이어트는 늘 미국에서 수백억 달러를 끌어들이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이제 나를 예로 들어 보자.

나는 외국인 악센트를 없애기 위해 노력을 했다.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악센트를 가지고 대화를 할 때 내 의중을 자꾸 되묻는 것에 ("huh?" "can you repeat that again" "sorry?") 매우, 아주 매우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98%가 백인이던 그곳에서는 가장 빠르게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이 내가 그들처럼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와 같이 교환학생으로 왔던 그 유러피안 친구는 악센트를 없애고자 하는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그녀는 "I SAID! - - -" 라며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에게도 호통을 치며 자신의 영어를 알아듣기를 요구했다.

 


그 이유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내가 나를 너무 쉽게 바꾸기로 한 것일까, 그녀는 계속해서 자기주장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미국에서 삶을 꾸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악센트를 없애는 방향을 선택한 듯한데 결국 미국에서 돈 쓰는 입장이 아닌, 돈을 버는 입장으로 살려면 악센트는 없는 것이 나은 편인가, 이제는 대부분의 미국 대기업 CEO들이 악센트가 있는 영어를 구사하는 시대에 도래했는데 이건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아, 나는 오늘도 이렇게 별의별 생각을 다하면서 오전을 보낸다.
 



 

 

 

 

 


오늘의 그림은, 절밥을 얻어먹으로 오는 땡중들 그리고 절받을 얻어먹고 돌아가는 땡중들이다.

이 작품이 미술관에 전시되어있다는점이 나는 너무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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