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고 있으면, 운동부였던 그때가 느껴진다.
운동복을 입고나면 목 뒤에 꺼끌꺼끌한 폴리에스터가 느껴졌는데 그게 굉장히 불편했다.
등교하는 학생들을 등뒤로 느끼며 운동장을 돌던 아침운동시간은 이유 없이 창피했다.
오후 훈련을 가러 버스를 타면 '아, 이대로 사고가 나버렸으면 좋겠다.' '코치님한테 사고가 생겨서 오후 운동 취소됐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매일, 매번 들었다.
한 번은 정말로 코치님 차에 타이어 문제가 생겨 실외 훈련이 실내 운동으로 바뀐 적이 있는데, 그 소식에 너무 기뻐 들뜬 마음으로 버스를 타던 그 느낌이 기억이 난다.
운동을 그만두기로 했을때는 정말 막막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예진이는 베이커리라는 막연한 생각이라도 있지, 나는 그때 그냥 눈을 감으면 다음이 없기를 바랐다.
운동 부안에서 운동을 그만둔 학생들을 배신자 취급하며 얼마나 씹는지 잘 아는데, 네가 얼마나 잘되나 보자 라는 마음으로 지켜보는지 아는데 그걸 알면서 하나의 무리를 떠나는 건 생각보다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고유림이 묻던
"왜 운동부는 수업을 빠져야 하는지"
왜 그토록 어린 나이에 미래를 하나로 단정 짓고 그것에만 올인해야 하는지는 정말 지금도 모르겠다.
사실 그냥 계속 그래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별 다른 생각 없이 말이다.
미국 와서 알게 된 건대, 수업을 나가고 말고는 운동 퍼포먼스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뭐, 수업에 보내줘도 엎드려 잔다면 모를까, 그 유명한 미국 미식축구 선수들도 대학에서 훈련을 이유로 수업을 빠지지는 않으니 말 다 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하나에만 목매는 방식을 계속해 고수해오는지 모르겠다.
이 드라마에게 시청자로써 고마운 점이 몇 가지 있다.
1. 이예지를 끝끝내 펜싱부에서 탈퇴시켜줬다는 것.
사실 드라마를 볼 때는 '대충 8강까지 나간 뒤 "펜싱 계속할래요! 역시 전 펜싱이 좋아요" 이 소란 떨면서 돌아가겠군' 싶었다. 때문에 이예지가 4강 나가는 걸 기권하겠다 말할 때, 나의 펜싱은 여기까지라 말하며 자진 은퇴를 선언할 때 울컥했다. 그래, 이런 그림이 필요했다. 한우물을 파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만 파는 그림. 아닌 우물을 그만 파는 용기를 보여주는 그림.
운동부일 적 기숙사에서 도망갔다가 잡혀온 선배들의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 선배들은 길어봤자 일주일 동안 사라졌다가 어느샌가 돌아와서는 우리와 함께 훈련받고 있었다. 쑥떡쑥떡 소문에 의하면 코치가 본가로 가 잡아왔다더라, 다른 선배들한테 피시방에 있던 걸 걸려 잡혀왔다더라 등의 이야기가 들렸다.
한동안은 그 선배들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 누구보다도 여기 있기 싫을 사람의 얼굴을 어떻게 마주 봐야 하는 건지 몰랐다.
그 선배들도 기숙사를 몰래 나갈 때까지 무수히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 하지만 그 당시에는 운동부를 나가서 잘 된 경우가 거의 없었고..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나 이해가 됐다.
그 선배들도 운동을 그만둬야겠다 싶었을 때 나희도와 고유림 같은 선배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들의 결정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 말이다. 배신자 취급이 아니라 다른 길로 떠나는, 한때는 가까웠던 동지로.. 보기에는 많이 어려운 환경이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코치들은 선배들을 매가 아닌 자전거로 팼다.
2. 지승완의 엄마가 끝까지 지승완의 서포트를 해 주었다는 것.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은 참 트루인것인가! 지승완 엄마의 교무실 워킹은 통쾌하다 못해 나도 저런 어른이 되기를 기대토록 한다. 지승완에게 휘는 법도 알아야 한다 말하면서 부러지는 법을 택한 딸과 함께 눈물을 흘리던 장면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장면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아이들이 느끼는 생각과 감정과 혼란을 우습게 보게 된다. 별것도 아닌 것처럼 치부해버리는 그런 것 말이다. 나이가 주는 오만함인지 모르겠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어릴 때도 문제가 생기면 최선을 다해 온 힘을 다해 매달렸다.
그것이 교우관계던, 깜빡하고 안 가져온 준비물이던간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변명을 늘어놓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말이다.
지승완의 엄마가 지승완의 행동을 '그냥 멋모르는 아이가 떠든 실수'로 덮는 것이 아니라, 나이만 먹은 오만한 어른들로 가득한 교무실에서 홀로 어른으로써 그들에게 내던지는 말들은 지승완에게 평생 동안 큰 힘이 되었으리라.
가장 중요한 순간, 내편이어야 할 사람이 내편이 아님을 느낄 때 받는 배신감은 말로 설명이 안된다.
반대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지하지 않을 때,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은 평생토록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 응원은 오래도록 힘을 발휘한다.
우리 모두가 지승완 엄마와 같은 부모님을 가질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의 부모님은 이 장면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선가의 예비부모님은 아기에게 저런 부모가 되리라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애도 없는데 저런 어른이 되겠다 꿈꾸었으니 말이다!) 나는 혼자 버텼을지언정, 다음의 어린이는 그러지 않아도 될 수도 있다. 뭐 그런 생각들로 행복해진 일요일 밤이다.
예지야. 잘살아! 빵 배우는 것도 해보고, 다른 공부도 해보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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