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즘의 생각들

한 인간의 다양한 모습 - 첫사랑때문에 결혼을 못한다던 그 단골

by 아이고메 2021. 11. 3.
반응형

 

 

 

 

펍에서 일할 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일한 건 여름 시즌 반짝이였는데, 유학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꽤나 만나봤다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아직도 우물 안의 개구리였는지, 세상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해 준 경험이다.

 

 

 

 

오늘은 펍 오픈과 동시에 들어와, 내가 집에 갈때까지 술 마시던 단골손님들 중 한 명에 대해 기록하려 한다.

 

 

그 단골은, 당시 그 펍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들 모두의 이름을 알고있었고, 때문에 뉴페이스가 들어오면 바로 알아채고 인사를 건네곤 하는 사람이었다.  뉴페이스인 내게도 이름을 물었고, 단골이라 들었는데도 첫 맥주 후 바로 팁을 주길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펍 오픈직후에는 보통 손님들이 몇 없기 때문에 오픈 준비 마무리를 하면서 단골들의 대화를 들을 수가 있는데, 하루는 이 단골이 다른손님에게 그날 있었던 속상한 일에 대해 열변을 토해내는 걸 듣게 되었다.

 

 

그 길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한국에서 사는 이 미국인 손님이 펍을 오려고 지하철을 탔는데, 글쎄 어떤 젊은 여자가 자리를 양보해주더란다.

응? 뭐가 잘못인가..  싶었는데, 이 사람이 속상했던 이유가 나왔다.

 

'그래서 나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레이디 퍼스트.  아이 엠 어 맨, 낫 올드 가이"라고 말하고 내렸다'라고.

 

그러니까, 이 사람은 자신의 남성성보다, 노약자-나이 든 할아버지-로 인식이 됐다는 사실이 매우 슬프고 화가 났던 거다.

 

 

 

이 이야기가 특히나 재미있던 이유는, 이 단골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65+는 되는 사람이건만, 바에 여자만 왔다 하면 20 대건 30 대건, 치근덕거리며 남자로 다가가려 무진장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사랑에 나이는 없다면서 말이다.  그런 이 단골이, 자신이 젊은 한국 여자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 남자가 아닌, 노약자로 구분된다는 것- 알게 된 순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단골은 그 팩트 폭격에 꽤나 아파했다.

 

이 사건 이후에도 이 단골은 종종 어디선가 본인보다 훨씬 젊은 여성들을 데려와 어깨동무를 하며 술을 마시고는 했는데, 그렇지 않은 날에는 이단 골의 친구들이 내 앞에 앉아있는 여자 손님과 단골을 연결시켜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단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다.  괜히 욕먹고 팁 못 받을 일 있나.)

 

어떤 날은 조금 한적할 때에, 그 단골의 친구가 내게 저 단골이 무진장 불쌍하다면서 내가 발 벗고 "여자 소개하는 걸 도와줘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연설을 했다.  이유인즉슨, 저 단골이 지금 보다 훨씬 젊었을 적, 첫사랑에게 엄청난 배신을 당했고 (자세히 기억이 안 나는데 저 사람이 군대에 있는 동안 애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버렸다고 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여자를 믿지 못하고 저렇게 결혼도 못한 채 죽을 거라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듣고 조금이지만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생길뻔했는데,

 

 

그날 그 단골이 바에서 아주 신나게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필리핀으로 원정 성매매를 갈 계획에 대해 떠들어 대는 걸 보고 "염병" 하며 그 마음을 접었다.

 

 

 

그 단골은 가끔씩 일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음식을 사서 돌리거나, 커피를 사 와서 돌리거나 하는 친절을 베풀기도 했는데, 때문에 영어를 잘 못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그 단골을 좋게 생각하기도 했다, 회식할 때에 단골들이 한 말을 안줏거리로 삼아 얘기하면 "정말?!" 이라며 놀라기도 했다.

 

 

 

 

 

 

 

 

  

 

 

 

반응형

댓글